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잔혹했던 시기, 1976년부터 1983년까지의 군사독재 정권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납치당하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 ‘더러운 전쟁(La Guerra Sucia)’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진 이 국가 폭력의 배후엔 군부뿐만 아니라, 충격적이게도 일부 종교 세력, 특히 가톨릭 교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습니다.
고해성사가 고문실로 연결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 중심엔 크리스티안 폰 베르니히(Christian von Wernich)라는 이름이 있다. 그는 단순한 신부가 아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경찰 소속의 공식 군종 신부였고, 겉보기엔 수감자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제론 정권의 충실한 협조자였습니다.
그는 고해성사를 받으며 피해자들이 털어놓은 내밀한 정보를 경찰에 넘겼고, 고문실에 함께 들어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찰들에게 “당신들은 신의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신적 면죄부를 제공했습니다. 다시 말해, 종교라는 탈을 쓴 정보요원이자 심리전 도구였던 셈이다. 신성한 성사가 국가폭력의 도구로 전락한 것입니다.
피해자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었습니다. 직접 협박하며 정보를 빼내기도 했고, 고문과 살해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이쯤 되면 성직자라는 호칭조차 사치스럽습니다. 그는 권력의 사냥개였고, 교회를 등에 업은 공범이었습니다.
정의는 늦었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민주화 이후 한참이 지난 2007년, 아르헨티나는 마침내 그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69세의 폰 베르니히는 방탄복 위에 사제복을 걸치고 라플라타 법정에 섰고, 살인 7건, 납치 42건, 고문 31건에 연루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되었습니다. 법원은 그의 범죄를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명확히 규정했고,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수십 년간 가족을 잃고도 침묵을 강요당한 유가족들이 눈물로 받아든 ‘늦은 정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가톨릭 교회의 태도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교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고, 유죄 판결이 확정된 뒤에야 겨우 “깊은 슬픔” 운운하며 유감 성명을 내놨습니다.
뒤늦은 사과, 그리고 더 늦은 책임. 교회는 그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가요?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불의는, 더 큰 죄악이다
이 사건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종교가 정치 권력과 결탁할 때, 특히 그 권력이 폭압적일 때, 종교는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억압의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고해성사의 신성함, 사제의 영적 권위—all of that 무의미해진다. 진실은 가려지고,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폰 베르니히는 단지 개인의 일탈 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당시 교회의 구조적 침묵과 묵인을 상징하는 얼굴이었습니다. 몇몇 성직자가 정의를 외쳤던 것도 사실이지만, 교회 전체는 대체로 침묵했고, 침묵은 곧 동조의 표시였습니다.
교회가 지금 해야 할 일
이제라도 교회는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조직 내 부정의와 범죄에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불의에 연루된 성직자에게는 면죄부가 아닌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톨릭은 더 이상 ‘양심’의 상징이 아니라 ‘위선’의 아이콘이 될 뿐입니다.
폰 베르니히 사건은 단지 아르헨티나의 만의 과거사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모든 종교 단체에 던지는 경고입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체제의 악세사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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