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왕도 여러 여자 뒀다”는 말이 드러낸 종교 권력의 민낯

여성 신도들을 상대로 약 10년 동안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 50대 전직 목사가 구속되면서 종교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전직 목사 윤모 씨를 성착취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윤 씨는 2015년 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여성 교인들을 상대로 반복적인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더욱 충격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고소인 측에 따르면 윤 씨는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윗왕도 여러 여자를 뒀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변명이 아닙니다. 만약 실제로 이런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면, 성경 속 인물을 끌어와 자신의 성적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 목사의 일탈에만 있지 않습니다.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들고, 심지어 성경과 신앙의 언어가 가해자를 보호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는가라는 더 큰 질문이 남습니다.
10년 동안 반복된 혐의, 단순한 개인 일탈로 볼 수 있나
윤 씨에게 제기된 혐의는 한 번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지목된 기간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약 10년에 이릅니다. 피해자들은 반복적인 강제추행과 간음 피해를 주장하며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장기간 반복됐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종교 공동체에서 목사는 단순한 직장 상사가 아닙니다. 신도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상담하며, 때로는 죄와 구원, 회개와 용서에 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권위가 성적인 관계와 결합하면 단순한 개인 간의 관계를 넘어 신앙적 권력과 성적 권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위험한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나쁜 목사 한 명의 범죄”로만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다윗왕도 여러 여자 뒀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고소인 측이 전한 발언이 사실이라면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성경의 이용입니다.
다윗왕에게 여러 아내와 첩이 있었다는 성경의 서사를 현재 자신의 성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가져오는 순간, 성경은 신앙의 가르침이 아니라 가해자의 욕망을 보호하는 도구로 변질됩니다.
더욱이 목회자가 이런 논리를 사용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신도에게 목사는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의 말은 일반인의 말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논리는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 속 인물의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행동이 오늘날 정당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적 기록과 윤리적 정당성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가해자의 면죄부가 아니다
종교적 언어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잘못을 반성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성경 구절이나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때입니다.
이런 방식은 피해자에게도 치명적입니다.
피해자는 단순히 한 개인에게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종교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피해가 부정되거나 축소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니까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내가 신앙적으로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생각이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면 종교적 권위는 더 이상 보호의 수단이 아닙니다.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종교 공동체에서는 피해를 말하기 어려운가
종교 공동체에서 성폭력이 은폐되기 쉬운 이유는 권력관계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신도에게 신앙적 조언을 하는 동시에 공동체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가해자 개인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종교 공동체에서는 갈등을 피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함정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침묵시킨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은폐입니다.
가해자의 명예와 공동체의 이미지가 피해자의 안전보다 앞선다면 종교 공동체는 스스로 말해 온 정의와 사랑의 가치를 배신하게 됩니다.
출교만으로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피해자들의 처벌 요구 서한을 전달받은 뒤 윤 씨를 출교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해 혐의를 받는 인물을 교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출교라는 징계가 사건의 모든 책임을 끝내주는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 교단은 언제 문제를 알았습니까.
- 이전에 피해 호소나 경고가 있었습니까.
- 있었다면 왜 더 일찍 개입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한 개인의 범죄가 장기간 반복되는 동안 공동체의 감시와 보호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했습니까.
종교 내 성폭력 사건에서 사후 징계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짜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가해자 개인뿐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조직의 대응 과정까지 살펴봐야 합니다.
종교적 권위가 클수록 책임도 커져야 한다
목사라는 지위가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반대여야 합니다.
더 큰 신뢰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신도에게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에서도 그 기준을 가장 엄격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종교적 권위는 특권이 아닙니다.
신도들의 신뢰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순간, 그 권위는 봉사가 아니라 지배의 수단으로 변합니다.
따라서 종교계가 진정으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문제 있는 개인을 처벌했다”는 수준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피해자가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변 사람들은 왜 막지 못했는지까지 질문해야 합니다.
신앙의 언어가 폭력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성경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성경을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행동을 그대로 끌어와 현대의 성폭력을 합리화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피해자의 고통을 축소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신앙이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면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사람은 힘없는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권위보다 피해자의 안전이 우선되어야 하고, 교회의 명예보다 진실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
이번 사건을 단순히 “전직 목사가 성범죄 혐의로 구속됐다”는 한 줄짜리 뉴스로 끝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더 불편합니다.
- 왜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오랫동안 신도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까.
- 왜 피해자는 더 일찍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웠습니까.
공동체는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 종교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힘이었습니까, 아니면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을 포장하는 방패가 되었습니까.
종교의 가치는 권위의 크기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서 드러납니다.
결론 | 성경을 방패로 삼는 순간 종교의 권위는 무너진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다윗왕에게 여러 여자가 있었느냐가 아닙니다.
핵심은 성경의 기록이 누군가의 성적 욕망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분명해야 합니다. 종교적 경전도, 목회자의 권위도 성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기간 반복된 혐의와 그 과정에서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종교적 권력입니다. 신앙과 권위가 결합된 공간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말하기 어려웠다면, 우리는 개인의 범죄를 넘어 공동체의 구조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종교가 정말 사람을 구원하고 보호하는 공동체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권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안전과 진실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왕도 여러 여자 뒀다”는 식의 논리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것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왜곡한 사람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성착취의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종교적 권위 역시 폭력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건이 종교계에 남기는 가장 중요한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권력을 얻은 사람은 그 권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